Posted by firebird at 2008-08-19 23:09:05 | 1062 views
어느 불량한 과거팬이 본 이번 엑스파일 영화감상
*** 다음의 자주 드나드는 카페에 올린 감상인데 오랜만에 주티비를 방문한 차에 같이 올립니다. 남명희님 이번 영화블로그 카툰 잘 봤구요.^^ 전 주티비가 아직 있는지 조차도 몰랐다는...-_-;;****
십여년 됐나요, 지난번 극장판이 나왔을 때도 드라마 팬들은 다들 불만들을 잔뜩 토로했었죠.
드라마가 종영되고 수년이 지난 지금 마당에 기대도 안했던 극장판이 또 한번 나온다는 소식에
솔직히 기다리면서도 이번 역시 욕 꽤나 얻어먹지나 않을까 싶었거든요.
역시나 여기저기서 별로라는 평들이 올라오길래 이거 그냥 포기할까 싶었다가
월E와 다크나잇을 보고나니 이거 외엔 볼 것도 없겠다 싶어 마음을 다잡고 관람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옛정은 정말 무서운 것이라는 것.
영화는 전혀 화려하게 시작하지 않는데 도데체 오프닝이 있는지없는지 구분이 안가는 소박한 오프닝.
예전 같은 초자연적 미스테리는 아니지만 발단이 된 FBI직원의 실종사건 해결을 위해
FBI에서 스컬리를 통해 멀더를 수배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되구요.
카톨릭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는 스컬리와 FBI를 떠나 은둔생활을 하는 멀더.
아직까지도 과거 실종된 여동생에 대한 회한을 극복 못한 멀더는 수사에 합류하여 스컬리에게 동참을 종용하고,
의사로서의 확고한 소신과 임무를 지녔음에도 그간의 멀더 뒤치닥거리에 지친 스컬리는 둘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이번 엑스파일 두번째 극장판 영화는 애초부터 그간의 6년의 공백에 대한
팬들의 궁금증에 보답하고 보상하겠다는 제작의도를 가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극히 심플하고 검소한 오프닝과 엔딩크레딧 부터도 그러했고
영화 전체 스케일로 보아 총제작비도 대단치 않겠다 싶더군요.
장기탈취라는 사건 소재부터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신통한 플롯을 보이지 않는데
좀 더 가혹하게 본다면 지난번 극장판처럼 한편의 독립된 영화로서 공을 기울인 노력은 커녕
일반 영화관객을 끌여들여 대중적 흥행을 꾀하는 상업 원칙 조차도 무시한 것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반면 영화는 오로지 관객에게 6년이 지난 현재의 멀더와 스컬리의 안녕을 고하는 것으로
드라마 종영 후 지금까지 두 인물이 어떠한 관계의 진전을 보였는지를 이쯤에서 밝히면서
그 관계의 향방 또한 관객들이 가늠할 수 있을 만큼의 여지를 남기는 것으로
드라마의 매듭을 짓고 팬들에게 작별을 고하고자 하는 배우와 제작진의 마지막 무대인사 쯤으로 보입니다.
10여년에 걸쳐 이 둘이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쌓아올린 신뢰와 존경, 사랑(딱히 로맨스를 칭하는 건 아니고) 만큼이나
이 둘을 지켜봐온 고정팬들은 이들의 결속 못지 않은 단단하고 맹목적인 애정을
엑스파일에 대해 그리고 멀더와 스컬리에 대해 가지고 있을 겁니다.
엑스파일 이전이나 그 이후에 재미있고 뛰어난 드라마, 시트콤들이 숱하게 쏟아졌지마는
팬이라면 유독 엑스파일 만큼은 드라마에 대한 기억을 까맣게 잊어버린지야 이미 오래라도
결코 저버릴 수 없는 모종의 의리 비릇한 두 주인공을 향한 충성심이나 유대감, 뭐 이런 것들을 품고 있다고 봅니다.
멀더와 스컬리라는 두 인물이 보여준 완벽에 가까운 단단한 유대는 팬들에게는 여느 진실된 오랜 연인들의 그것을
월등히 뛰어넘는 절대적이고 이상적인 궁극의 인간관계 쯤으로 여겨질 정도이기 때문이죠.
최상급의 유대로 단단히 결속된 두 사랑하는 인물을 찬양하는 것은
팬들에게 허락되었던 크나큰 즐거움이자 동시에 소임같은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두 주인공을 느긋하게 주시하다 보니 흘러간 시간 만큼의 세월의 흔적이 두 배우의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는데 그것은 듀코브니와 앤더슨의 것이기도 한 동시에 멀더와 스컬리의 것이기도 한 지라
주인공 캐릭터를 연기해준 두 주연 배우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함이 물씬 솟기도 했구요.
무엇보다도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가장 큰 변화는 이전의 엑스파일이 줄곧 취해왔던
두 다른 성을 가진 주인공들이 유지해온 뭐라고 정의내리기 모호한 파트너쉽에 대한 최종 입장,
팽팽한 성적 긴장감을 유지했던 엑스파일 초기시절에 비해 이후 어느 정도는 발전했었던 그들의 관계가
과연 '로맨틱'한 것으로 귀결될 것인지에 대한 해묵은 궁금증이자 가장 중대한 과제에 대해
비로소 지금에서야 약간은 노골적인 비쥬얼씬을 통해 밝히고 있는 제작진의 결론은
(그래도 여전히 두 주인공 스스로 명확히 정의하지 않고 있어 팬들을 사색에 빠뜨리는)
첫만남으로부터 16여년이 흘러 현재에 이른 지금 충분히 납득된다고 보며 개인적으로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영화를 보던 중 놀라움의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던 그 두 남녀의 모습이 나오자마자 그 의외성에
문제의 장면에서 너무 웃겨서인지 기가막혀서인지 기뻐서인지도 분간이 안되는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뒤늦은 축하의 심정과 더불어 깊은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서로가 서로에게 절대적이고 유일하다 보니 결코 상대방이 아니었다면 그간의 시간들이 멀더와 스컬리 각자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이자 철저히 고독하고 불완전한 것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 둘을 지켜봐온 팬으로서 뼈저리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때 열정적이었던 애정을 되살려가며 보낸 2시간 남짓의 엑스파일을 보는 행위에는
더 이상의 어떤 평가나 비판의 잣대를 갖다 댈 필요가 없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그 순간 실시간 실존하는 엑스파일과 멀더와 스컬리의 존재 그 자체, 그리고 이 둘의 건재함,
그리고 이 모든 것들과의 감격적인 해후,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엑스파일 광팬이 분명하셨을 어느 평론가가 표현한 그대로 말이죠. 팬은 반대를 모른다는.
Comments
동감입니다. 기가막혔음에도 불구하고 안도가 되는... ㅎㅎㅎ 엑스파일이라는 것으로 멀더와 스컬리라는 것으로 모든 것이 사라지고 용서가 되어버린 이 팬의 심정...오랜만에 다시 느끼고 또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와...정말 공감하는 글예요....어쩌구 저쩌구를 떠나 두사람 얼굴 보는것만으로도 정말 기뻤답니다...정말 멀더와 스컬리는 어디선가 살고있을듯해요